컴퓨터실 선생님이 있습니다
뭐하는 사람이냐면
애들 온라인 학습할때 로그인문제를 도와준다던지
소리가 안들려요 키보드가 안되여 마우스가 어쩌구 하는거를 봐준다던지
딴짓하는 애들, 멍때리는 애들 관리 감독하는 선생님이지요
헤드셋을 낀 애기들은 고요속의 외침이라는 게임처럼 왈왈거리고 있습니다
화면을 보며 자기 목소리에 심취해서 꼬부랑 혀를 굴립니다
그런 돗대기 시장통에서 뒷짐을 진 컴퓨터실 선생님은 언제나 침착합니다
그와중에 립싱크하는 어린노무새끼들을 다 잡아냅니다
그러면 항상 아무 감정없이 억양없이 한 음으로 말을합니다
민규. 집중해야지
다윤아. 화면봐
호명되는 애들은 어째서 다 내 새끼들입니다
교실에서 새는 바가지 컴퓨터실 가서도 질질 샙니다
컴퓨터실 쌤은 타종없는 우리 학원에서 타종역할을 합니다
시간되면 애들 교실로 보내고 또 오는 애들 맞아주는 일을 합니다
자, A반 교실가자.
애기들이 와글와글 복도에 줄을 서면 나도 수업을 정리합니다
스벅에서 진동벨 대신 고갱님을 외쳐주는 것 처럼 인간적인 버저라고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들 대신 단어장이나 워크시트같은 것을 뽑기도 합니다
반마다 그날그날 쓰는 워크시트를 티칭플랜을 보고 착착 잘도 정리해놓습니다
컴퓨터실 선생님은 그야말로 일 잘하는 로보트 같습니다
필요한 말과 필요한 일만 합니다
단점이라면 실내화를 존나게 끌고 다닌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집에서 찍는 발망치 학원서도 찍는걸겁니다
컴퓨터실 선생님 아랫층사람
쓰미마셍
우리 학원은 출근하면 곧장 모든 반별 숙제를 미리 밴드에 공지하는데
컴퓨터실 선생님이 교실마다 돌면서 우리가 적어주는 숙제내역을 받아다가 대신 숙제공지를 해줍니다
나는 이제 이 학원에 온지 두달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전임강사가 잘리고 공석이던 자리에 왔는데요
아무도 인수인계를 해주지 않는데다
쉬는시간이 없이 로테이션 되는터라 붙들고 물어볼 사람도 없어요
짬바가 있으니 어찌저찌 눈치껏 한달은 버텼는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며칠전 첫 월급을 받았고 아직 잘리지는 않았요
으레 영어학원에서는 메리 제인 사만따 따위의 영어이름을 씁니다
케이트 애쉴리 랄프 로렌 같은 브랜드이름도 많슙니다
나는 줄곧 멋없이 세레명을 썼는데요
나중가서는 영화주인공의 이름을 대충 씨부려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는 본명을 쓰는데
나이를 먹으면 이름이 불릴 일은 병원과 약국뿐이라 신기하면서도 책임감이랄까 그런것이 느껴집니다
이제는 물건을 사러가도 민원을 보러가도 이모야, 선생님ㅇ라고 부릅니다
처음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핸드폰수리점에서
아니, 어떻게 알았지? 내 제자였나? 하고 좀 놀랬습니다
여튼 강사생활 근 15년차에 실명으로 일을 하는건 아직 익숙하지않습니다
생각해보니 그전까지는 알라 장난같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게다가 개명을 한터라 이름이 불릴때마다 저게 내이름이지 참 하며 놀라기도 합니다
컴퓨터실 선생님은 이름이 컴퓨터실이 아닐테지만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컴퓨터실 선생님이라고만 부릅니다
컴퓨터실은 내 교실 바로 문앞이라 가깝습니다
미치광이 D반 수업 할적마다 데쓰메탈 보칼같은 사자후를 이따금 내지르는데
그때마다 투명한 교실문 너머로 컴퓨터실 선생님 대가리가 멈칫하며 놀라는게 보입니다
쓰미마셍
뭘 해야하는 날인지는 모르지만 학원이 온통 분주한 날이었습니다
무뚝뚝한 컴퓨터실 선생님을 또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뭘 촬영해서 밴드에 올리는 날이랍니다
역시나 들어본적 없는 아무도 말해준적 없는 업무입니다
아.그래요. 그렇구나.
애들도 다 알지만 나는 모릅니다
루틴이겠지요
눈알만 다글다글 굴리며 대가리 벅벅 긁고 서있으니
아. 제가 해드릴게요. 컴퓨터실 선생님이 말합니다
덕분에 뭐 촬영하는 날을 그렇게 잘 마쳤습니다
그렇게해도 되는 거였는지 아직까지는 원장으로부터 별말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일일보고서를 돌려받을때 뭐라 코멘트가 달려있습니다
이런식으로 업무전달이 이루어집니다
퇴근할때 일일보고서에 전달사항이나 특이사항을 기록해서 제출하면
다음날 싸인된 보고서가 책상에 얹혀져 있습니다
첫 날에 선생님들이 노란 화일을 로비에 착착 갖다 꼿길래 저게 뭐지? 책상을 보니
나도 노란파일이 꼿혀있습니다
엄지손가락만한 견출지가 덕지덕지 몇겹 덮혀있습니다
내 이름이 적힌 견출지가 전임자의 이름을 덮고있습니다
전임선생님이 쓰던 일지를 읽어봤습니다
박상신 책 안가져옴.
김다윤 노서준 싸움.
주찬양 숙제안함.
애들이 손민규 싫어함.
D반 숙제를 안해와서 문법 스케줄 계속 밀림.
원어민 코멘트에 문법오류가 많은데 어떡할까요?
에어콘에서 소리가 납니다.
전자칠판 스피커 문제.
스테이플러 10호 구매요망.
나도 똑같이 쓰면 됩니다
노서준이 김다윤 불알차서 김다윤이 수업내내 불알아프다고 울었음. 왜 그랬냐고 노서준에게 물어보니 김다윤이 먼저 뺨싸대기를 때렸다고 함.
차홍서 이때까지 틀린문제도 다 맞다고 가짜로 채점함-왜 유독 과제물점수에 비해 시험점수가 낮은지 알것같습니다. 월반문제로 어머님 컴플레인 상담기록있음.
창문이 안열림.
돌려받은 일지에는 각 항목마다 체크표시가 되어있거나 밑줄이 그어져있습니다
읽었다는 뜻입니다 허투루 읽지 않았다는 표시입니다
형광펜으로 칠해진 부분은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비고란에 멘트가 달려있습니다
지난달 말에 미치광이 D반의 밀린 스케줄을 다 따라잡았다고 적었을때는
그 항목에 별표와 '수고하셨습니다'가 적혀있었습니다
일기장에 선생님 코멘트보는 재미가 있던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 코멘트 한번 받자고 친구는 집에 가짜로 불도 질렀고 누구는 할머니가 3번씩 돌아가셨고 엄마들은 돈봉투를 찔러줬었지요
우리가족이 어딜갔다 오던길에 코란도가 전복된 날 일기에 선생님이
아이고. 저런. 을 적어줬던 날이 기억납니다
집에 걸어오는 길에 아이고.저런. 아이고.저런. 계속 중얼거렸습니다
어떤 감정인걸까 아이고.저런.은
어린 나로선 알길이 없어서 아주 고차원적이면서도 점잖은 어른의 마음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김다윤이 불알을 잡고 울때 내가 그랬습니다
아이고.저런.
컴퓨터실 선생님은 교재준비가 안된 아이들 책도 복사합니다
쉼표 앞머리를 연신 젖히면서 복사기앞에선 컴퓨터실 선생님뒤에서 나는 내 프린트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득 돌아보더니 자기가 가져다 준답니다
교실로 돌아와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왈왈거리는 파닉스반 애기들은 앞늬가 없는데 F소리낼때 아랫입술을 물라는 선생님의 말이 가혹합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손짓하더니 마스크를 살짝 내려서 텅빈 앞늬를 보여줍니다
'어뜨케해여 없어요 앞늬가'
그러니까 옆에 친구가 역정을 내면서
'아 있다고 생각하고 하면되지! 이러케!'
하면서 마스크를 끌어내려서 에어앞늬로 입술 깨무는 시늉을 보였습니다
뒤에 앉은 집채만한 덩치의 손민규가
'나는 이빨 다 있눈뎅' 하니 울던애가 획 몸을 돌려 노려봅니다
'아 잠만!잠만! 이렇게 하면 되겠네!'
마스크를 끌어내려 시범을 보이는데 이자식이 아랫늬로 윗입술을 깨물고 앉았습니다
컴퓨터실 선생님이 마침들어와서 내 프린트를 건네줍니다
손민규가 갑자기
오오오옹. 둘이 사겨여? 합니다
손민규.집중해.
컴퓨터실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한음으로 멘트를 남기고 아무렇지않게 돌아갔습니다
손민규가 나는 몇살이냐 물어봅니다
'컴퓨터실 선생님은 26살이래여'
컴퓨터실 선생님은 우리보다 30분정도 늦게 출근합니다
등장부터 요란하게 삼디다스 실내화로 지축을 뒤흔들며 복도를 걸어옵니다
언제부턴가 그러다 내 교실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는
안녕하세요. 한음으로 억양없이 감정없이 인사하고 갑니다
이름도 없는 26살의 컴퓨터실 선생님
여러모로 도와줘서 고맙지만 딱히 뭐 줄만한게 없습니다
백팩을 뒤적거리다가 다찌그러진 검은콩두유 3팩이 나왔습니다
꾸깃꾸깃 모양을 잡아 그나마 멀끔한놈으로 골라쥐고 컴퓨터실 선생님에게 내밀었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물론 한국인에게 이것은 질문이 아닙니다
그저 인사나 의태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순간이지만
보이는건 눈 뿐인 언텍트시대에
컴퓨터실 선생님의 눈이 가늘게 곡선을 그렸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까지는 살짝 흐트러진 목소리였고
합니-까지는 다시 한 음의 노억양 노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에서는 공기반 소리반이었습니다
컴퓨터실에는 길다란 옷걸이가 있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뭔지 한달동안 옷을 걸어두는 선생님은 나뿐이었습니다
며칠전에 보니 옷 한벌이 더 걸려있었는데 컴퓨터실 선생님 옷이었습니다
또 며칠전에 보니 누군가가 내 패딩 왼쪽 소매를 컴퓨터실 선생님 패딩 오른쪽 소매에 끼워놓았습니다
아마도 컴퓨터실 선생님 퇴근즈음이었으니 중등부 소녀들 짓이겠지요
한창 그럴 때입니다
컴퓨터실 선생님이 그걸 봤을때 어떤표정이었을지
기분이 나빴을지 아무렇지 않았을지 신경질적으로 빼냈을지
나는 모릅니다
아마도
아이고.저런.
뭐 이런 아주 고차원적이면서도 점잖은 어른의 마음이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