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민재
민재는 phonics cue 1권이 거의 끝나갈즘
그러니까 8과가 시작되는 날 학원에 등록했다

우리반은 GnB라던가 튼튼영어 윤선생 영어숲같은데서 1년정도 공부하다가 심화과정에서 못버티고 튕겨져나와 집에서 놀던 애들이다
어느새 5학년을 목전에 두고 이제는 더 미룰 수 없어서 다시 영어학원에 온 이들의 엄마들은 이번 방학에 누구도 모르게 파닉스를 끝내게 할 참이다

입으로는 우리아이 흥미잃지않게 '재미있게'를 강조하지만 
이상하게 진도가 느리지않냐며 신학기전에는 리딩이 들어가야하지 않을까요를 찜찜하게 덧붙이는 엄마들이다
같은 학교 동생들과 마주칠까봐 자기 아이가 5학년이나 되어서 파닉스를 하는게 소문이라도 날까봐 보통 문법 수업이 시작되는 6시나되어서 파닉스반을 만들게 된 것도 엄마들의 '지극한' 자식사랑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옆반에서는 중등부가 수업중이니 챈트를 좀 작게해줄 수있겠냐는 원장의 주문은 그런 엄마들 주머니를 탈탈 털어먹는 원장의 '교육자'다운 면을 잘 보여준다

그러게나 말게나 목청이 터져라 챈트를 시키고 에이비씨 송을 마르고 닳도록 틀어재끼는 나는 '순종적인' 직원의 표상이다

알파벳은 그래도 알고 있고 제법 꼬부랑발음도 흉내낼 수 있는 정도는 되지만 f와 j,t가 왼쪽으로 꺾여야하는지 오른쪽으로 꺾여야하는지
b와d, p와 q가 아직 헷갈리기도 한다
원장의 꼬임에 넘어가 파닉스를 다시 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이 과정이 지나면 얼마나 어려워지는지 이미 겪어봤기 때문에
지금이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너무 잘 알고있다
때문에 이 느리고 유치하고 반복적인 수업을 즐기고 있는것이 빤히 보인다
스티커를 하나 붙여도, 색연필로 그림을 칠하는 손놀림이 그렇게 정성스러울수없다
챈트가 그리 신나고, 틈틈이 챈트중에 특정 단어에 박수 치게 시키면 교회 찬양시간 마냥 영광영광영광 영~광 나는 꽤나 수완이 좋은 목사가 된 기분마저 든다

민재는 첫날 어리둥절하게 앉아 한박자씩 늦게  뭘하려고 할때마다 끝나버려서 적잖이 당황했다
민재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컸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애들은 5학년이라기에는 몸집도 작고  많이 앳된 얼굴이긴했다
아침저녁 엄마가 얼굴에 로션발라주고 빤쓰입혀서 보낸것 같은 아기들 같았는데 알고 보니 5학년이라고해서 뜨악했었다
민재는 길쭉하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뽀오얀 밀가루 인형같은 피부에 날카로운 인상을 가졌다
으레 우리반애들의 디폴트값인 태권도 도복에 맨발, 까만 롱패딩이 아닌 회색후드티에 안감을 두툼하게 덧댄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무려 양말을, 아가일체크무늬 양말을 신었다
토마토안경이 아니라 동글이 금테안경을 썼다
지 눈에도 아이들이 어려보였는지 오자마자 기선제압이 목적이었는지는 몰라도
아이들이 모를 법한 어려운 단어를 늘어놓고 갑자기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었다던지 하는 거드름을 피웠다
영어를 처음배운다는 민재는 그래도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것이 있어 그런지 걱정만큼 형편없지는 않았다

민재는 처음 며칠 비협조적이었다
내게 건네는 말투는 공격적이고, 챈트도 수업방식도 민재에게는 다 유치했다
그래 바이든이 대통령인데, 애 애 애플은 좀 유치하지?

벽에는 아이들이 신주단지 모시듯이 귀하게 여기는 스티커판이 붙어있다
부직포로 만든 바다에 아이들이 직접 그리고 오린 바다생물이 븥어있다
민재도 스티커판이 필요하기때문에 "내일까지 그려와"
오늘도 내일도 "아, 맞다"하더니 
그때였나, 하도 수업시간에 개소리를 하길래
차마 욕은 할 수 없고 머릿속으로 교육적으로 안전한 단어들을 고르고 고르다
"우리 민재는 정말... 특..별하구나" 했던 다음날인가 
민재가 범고래인지 혹등고래인지를 두개 그려왔다

그중에 푸른색을 3가지 정도 섞어서 미려하게 채색된 고래한마리가 꽤나 아름다웠다
"두마리나 그려왓네?"
"쌤 둘 중에서 뭐 할까요?"
"와. 이거 정말 예쁘다! 민재야 이거는 나 주면 안돼? 나머지를 스티커판으로 쓰자"
"네 뭐. 상관없어요"
"아싸! 민재 그림 진짜 잘그린다"
아이들도 모여서 구경했다
칭찬일색이다
후로도 아이들은 민재에게 이것 저것을 그려달라고 했고, 민재는 아-이거 곤란한데 하면서도 기쁘게 그려주었다

일과가 끝나고 퇴근준비를 하다가 책상에 놓인 푸른고래가 보였다
정말로 나는 그 고래가 좀 마음에 들었다
허전한 내 책상옆 빈벽에 잘 붙여뒀다

다음날 민재는 고래가 잘 있는지 확인하러 내게 왔다
"고래는요?"
"여기"
책상옆 벽을 홀로 헤엄치는 고래를 보여주었다
"쌤 학생 그림 벽에 붙인적있어요?"
"아니? (여기서는)처음이야"
"와. 처음"

낙관을 찍듯이 내 수업은 마칠때 그날 진도의 마지막 페이지에 본인이 싸인하고 날짜를 쓰도록 시킨다
싸인이래봤자 꼬물꼬물거리는 그림같은 것을 그린다
그때그때 아이들에게 유행하는 컨텐츠가 뭔지 잘 알 수있는데 요즘은 임포스터를 그린다

"흠. 나는 특별하니까...보자"

죄다 임포스터를 그려놓고는 서둘러 민재는 무엇을 그렸는지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토끼네?"
"토끼다!"

민재가 문득 고개를 들어서 나를 쳐다봤다

"토끼상점주인이야"
"아~토끼상점!"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봤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학원에서 행사를 했다
지금껏 모은 스티커로 뭐 물건사고 게임하고 그러는 날
나는 으레 몇년째 학원 행사때마다 쓰던 주토피아 주디 토끼모자를 쓰고 물건을 팔았는데
벽에 크리스마스 리스하나 안붙은 심심한 데코가 아쉬워
이면지에 '토끼상점'이라고 쓰고 여기저기 토끼를 그려서 간판삼아 붙여뒀다
코로나때문에 먹을것 하나없는 심심했던 행사에서 그나마 아이들 기억에 남은 모양이다

"어디보자, 어머 민재야 이거 나야?"
"어..아니에요 그냥 토끼상점 주인인데요"

아이들이 일제히 왁 소리쳤다

"야! 토끼상점 주인이 쌤이잖아!"
"아, 그런가?"

어제는 저녁늦게 비가 왔다
고래는 왜인진 배를 까뒤집고 누워있었다
바빠서 돌려놓을 생각을 못했다
민재는 오늘도 오자마자 고래의 안부를 확인했다

"어, 뒤집혀있네?"
"그러게. 왜 그렇지? 이따 비가 올거라서 그런가?"
"아. 비가오려고 그러는구나!"

월요일에 날이 맑으면 다시 고래를 똑바로 돌려둬야겠다
맑은 날에는 등을 보이고 비가오면 배를 보여주는 고래

나쁘지않다
작품 등록일 : 2021-01-23

▶ 탈모약을 먹으면 생기는 일[극혐주의//쌩얼주의//피부더러움주의]

▶ 나의 좆같은 D반새끼들

잘하네. 민재는 저 칭찬 하나로 세계가 바뀌는 기분이었을거야.
sa*******   
선생님의 말씀엔 치명적인 오류가 있습니다 제가 논리적으로 반박해드리겠습니다
  
멋진데
가지   
언니 민재의 마음을 얻었구나 대단하다 ㅋㅋㅋㅋㅋㅋ
콩떡   
아 너무 귀여워 ㅠㅠㅠㅠㅜ
콩떡   
흑 언니는 정말 짱이야
나도 애로 돌아가서 언니 학원 다니고싶다
jj****   
ㅠㅠ사랑해 언니
너무너무 사랑해
진미오징어   
언니 사랑해♡ 그냥 이 글을 읽고 나니 언니한테 사랑한다고 하고 싶어졌어!
겨미인   
넘 따뜻한 것..난 틱틱대는 애들 대하다보면 참지못하고 욱하는데 언니처럼 한 템포 쉬면서 얘기해보고 싶네
블랙쉽   
할튼 남자애들은 왜저리 틱틱대는지ㅋㅋㅋ
바게트같어 겉바속촉
성체 파닉스말고 앞니 없어서 철철울던
애기 파닉스반 얘기두 해조 언니ㅋㅋㅋ
그리고 꼴통 d반 어케됨ㅋㅋ
시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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